“안철수, 이 자가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야겠다.”

안철수의 멘토였다가 문재인의 멘토였다가 다시 안철수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윤여준씨가 했다는 말이다. 그가 8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새정치연합 의장을 맡고 있는 그가 최근 민주당과 신당 창당 논의에서 배제된 것 때문에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런 말까지 했다.

"이거(창당 방식)만 결정되면 떠난다. 싱가포르로 놀러 갈 생각이다. 내가 창당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 있을 이유가 뭐 있나. 멋쩍게 창당대회에 앉아 있으라고?”

   
경향신문 3월8일 1면.
 
이 인터뷰의 파장은 컸다. 한때 윤여준이 안철수를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안철수를 다시 볼 정도였다. 그런 그가 사실상 안철수와 결별을 선언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윤 의장은 그게 농담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8일 오후 열린 한 토크쇼에서 윤 의장은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농담한 것이다, 다른 뜻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순전히 몇 명의 기자들과 농담을 주고 받았고, 농담을 농담으로 받은 것인데 그 중 한 대목을 정색을 하고 인터뷰를 한 것처럼 보도가 됐다"는 게 윤 의장의 주장이다.

이날 토크쇼는 윤 의장과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등이 공동으로 저술한 책 출판 기념으로 마련됐다. 윤 의장의 해명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다.

본인이 직접 경향신문 인터뷰가 사실이라고 밝혔으니 이 인터뷰의 발언 가운데 넉넉히 농담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해서 보면 이해가 쉽다.

안철수 의원이 거짓말을 했다는 발언은 신당 창당 과정에서 밀실 논의가 있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나온 말이다.

“내가 왜 여기에 관심이 있느냐면, 이게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아야 이 자가 나한테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나한테 그렇게 수도 없이 새 정치를 다짐하더니, 연기력이 많이 늘었다. 아카데미상을 줘야 한다.”

'감쪽같이 나만 빼놓고 신당 창당이라는 빅 이벤트를 연출하다니', 이런 불만과 서운한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고 보면 이 말은 농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연기력이니 아카데미상이니 하는 표현도 다소 과장된 불만 표출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 많이 삐졌다" 정도의 의미다.

그러나 다음 발언은 농담이라고 하기 어렵다. 농담일 수가 없는 게 현상과 그에 대한 평가다.

“창당을 해야 하는데 사람이 부족하니까 이제 막 실행위원들을 집어넣는 모양이던데. 당초에 만들었던 실행위원들이 형편없는 놈들이 많다고 해서 안 의원이 화내고 배제하고 그랬는데. 그 사람들을 다시 다 집어넣어서 시·도당 발기인을 만들고 있다.”

윤 의장의 발언은 신당 창당 과정에서 안 의원과 윤 의장이 상당한 불협화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징후로 이해할 수 있다. 안철수 의원과 결별까지는 아니겠지만 안 의원의 처신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토크쇼에서 윤 의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치인을 못 내도 (합당이 아니라) 끝까지 갔다면, 정당투표를 통해 정치적 자산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윤 의장이 서둘러 발언을 접으면서 봉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윤 의장의 인터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련의 팩트는 안철수가 윤여준의 조언을 받지 않고 있으며 구체적인 전략 없이 독단적으로 신당 창당을 결정했고 안철수 주변에 인물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사실 등이다. 당장 안철수가 신당의 일정 지분을 확보하고 지방선거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겠지만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기성 정치권의 한복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리더십의 위기에 봉착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윤 의장이 짚고 있는 부분도 정확히 그 대목이다.

“이태규 새정치기획팀장 가버렸지, 윤석규 전략기획팀장 떠났지, 실무책임자였던 김성식 실무단장 갔지.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가 다 떠났다. 당장 창당 협상 작업을 해야 하는데 페이퍼 하나 만들 사람이 없다. 아, 정말 뭐. 내가 실무를 할 수도 없고….”

이 발언 역시 농담이 아니라 팩트다. 사실상 이 인터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포르 운운은 그 다음에 나온 말인데 그 말은 농담일 수도 있다.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윤 의장은 "창당 방식만 결정되면 떠난다, 싱가포르로 놀러 갈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토크쇼에서는 "민주당이 새 정치의 진정성이 많다고 판단하면 나도 새 정치를 한다고 온 사람이라 같이 해야 한다"면서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그때 가서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운운이 농담이라면 안철수 의원에 대한 신뢰와 별개로 신당에서 일정 정도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당에 합류한다면 안철수와 결별 여부는 사실 의미가 없다.

윤 의장이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를 떠나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뒤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국민들이 복이 없다, 안철수도 문재인도 인물이 아니다."

그랬던 그가 다시 안철수와 손을 잡고 이제 다시 민주당과 합류하게 된 상황에서 대외적으로는 안철수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면서 사석에서 농담으로 안철수를 한참 아래로 깔아보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경향신문 보도로 확인됐다. 정치권에서 그를 달리 책사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경향신문의 인터뷰는 안철수의 얕은 정치력과 그보다 더 얕은 인맥을 가늠하게 하는 흥미로운 기사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데일리에 따르면 안철수 의원은 윤 의장의 경향신문 인터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문학상 후보들로 선정해야겠다, 연말에 상을 드려야 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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