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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

이말년

“나도 불사조 같은 캐릭터를 가지고 만화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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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슬픈 소식을 전해야겠다. 이미 아는 이들도 있겠지만 4년여 동안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었던 [이말년 씨리즈]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연재가 끝난다. 그리고 지구는 멸망했다.

2012년 첫 연재를 신혼여행 다녀오면서 시작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지낸 지난 1년이었겠다.
생활이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아내가 내 마음대로 하는 걸 이해해주는 편이다. 사실 부부가 같이 생활해야 하는데 나는 밤에 아이디어 짜는 버릇을 들여놔서 밤에 활동하고 낮에 잔다. 그래서 서로 생활이 어긋나는 편인데도 잔소리를 안 한다. 차이가 있다면 안정감? 아무래도 밥도 챙겨주고, 정신적으로도 뭔가 안정적이 됐다. 기안84랑 살 땐 좀 각박했지.

마감하긴 어땠나.
[이말년 씨리즈]는 올해까지만 연재하기로 했다. 이런 스타일로 짤막짤막한 소재를 찾아서 하는 게 쉽지 않다. 지금 280회 정도 했는데 이제 아이디어 짜다보면 전에 했던 거랑 겹친다. 그게 1년 넘었다. 그동안 억지로 짜내고 짜낸 거다. 옛날에는 3일이면 나올 게, 요즘은 4, 5일 걸린다. 전에는 안 한 게 많으니까 이런 거랑 요런 걸 섞어서 하면 어떨까 하면 쭉쭉 나오는데 요즘은 시작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 하루 종일 소재를 생각하며 노트에 끄적거리는데 그야말로 공치는 날이 많다. 그게 제일 괴롭다. 하루 종일 뭔가 했는데 결과물은 없고. 이건 논 것도 아니고 일한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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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소재를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여러 사이트에서 찾았는데 요즘엔 재밌는 소재가 없는 건가.
우선 요즘 내가 유머 사이트에 안 간다. 예전에는 각종 유행하는 게시물을 꿰고 있었고 그래서 패러디가 엄청 많았는데 이젠 거기에 회의를 느꼈다. 패러디를 하다 보니 패러디를 위한 만화가 되는 거다. 내용 안에 패러디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패러디를 하려고 만화를 꾸미는 상황. 그러면 개그가 휘발성이 되고 몇 주만 지나도 촌스러워지더라. 사실 패러디는 그냥 가져다 쓰면 웃기다. 일종의 무임승차인데 그걸 안 하려니 힘든 거다. 최대한 안 넣고, 혹 넣더라도 내용에 영향 안 미칠 정도로 하려 했다.

그런 사이트를 안 보면 소재 찾긴 확실히 힘들었겠다.
일종의 훈련이라 생각했다. 나는 예전부터 김진태 작가님 스타일의 나중에 봐도 깨알 같은 개그를 좋아하고 지향하는데, 앞으로 그런 걸 그리기 위해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하고 있다. 손 글씨로 해보는 건 어떨까 해서 손 글씨로 대사도 넣어보고, ‘서양신과 함께’ 중간엔 태블릿 안 쓰고 펜으로도 해보고. 사실 그땐 태블릿이 망가져서 휴재할까 하다가 원래 한번쯤 시도해보고 싶어서 했던 건데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 잘못 그리면 다시 그려야 하니까. 그렇게 이것저것 해보고 있는 중이다.

고충은 이해하지만 독자들은 더 억지로라도 연재를 늘리면 싶을 것 같다.
내려야 한다는 사람도 많았다. 내 별명이 디시인사이드에서 퇴물이었다. 나는 충분히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그렸는데 하나도 재미없다고 하더라. 왜 그러지?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걸까? 그건 좀 좋게 생각한 거고, 나쁘게 보면 내 개그에 질린 거겠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개그 패턴을 바꾸자니 그러면 [이말년 씨리즈]의 맛이 안 날 테니까. 그래서 기왕이면 새로운 타이틀로 바꾸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국지’부터 ‘악마대백과’까지가 신작 후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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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연재 종료 후 바로 신작 준비에 들어가는 건가.
신작은 할 거지만 아직 계획이 잡힌 건 없다. 이걸 끝내야 다음 게 나올 거 같다. 사실 [이말년 씨리즈]를 더 빨리 내리려고 했는데 차기작 준비가 된 상태에서 매끄럽게 바통 터치하고 싶어서 계속 끌었던 거다. 그런데 계속 연재를 하면 당장 다음 주 에피소드 하기 급급해서 도저히 신작 준비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선은 내리려고 한다. 다음 작품은 아직 생각 안 해봤다.

언젠가 말했던 [삼국지]의 재해석을 하는 거 아닌가.
[삼국지]도 있긴 한데, 버거울 거 같아서 후보를 여러 가지 놓고 그 중 재밌는 걸 하려고 한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시기를 그려도 재밌을 것 같다. [용의 눈물] 같은 사극에서 보듯 나라가 바뀌는 시기에 사건이 많지 않나. 캐릭터가 있는 옴니버스 스타일 개그 만화도 후보로 놓고 있다. 옛날에 보면 ‘악마대백과’ 류의 책이 있지 않나. 악마의 각 계급이나 그런 게 굉장히 복잡한데 굉장히 ‘찌라시’ 같은 재미가 있다. 그 설정이 좋아서 그걸 토대로 지옥의 일상을 그린 옴니버스 개그 만화도 구상 중이다. 어떤 작품을 하던 결국 개그일 텐데, 소재를 무엇으로 할지 찾아야 한다.

[이말년 씨리즈] 연재가 힘들다는 것과 새 작품을 시작하는 욕심 중 무엇이 더 컸나.
반반이지. 억지로 하자고 들면 몇 년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러면 내가 새 걸 못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곽백수 형이 예전에 [트라우마]를 엄청 오래 했다. 인기도 많고 작품도 매번 재밌게 뽑아냈는데 어느 틈에 신작 낼 타이밍을 놓쳤다고 하더라. 그래서 [가우스 전자] 시작하기까지 힘들었다고. 4년 정도 했으니 할 만큼 했고,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좋을 때 끝내는 게 나을 거 같다. 그리고 나도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 캐릭터가 있는 만화. [이말년 씨리즈] 하면 생각나는 캐릭터가 없지 않나. 기껏해야 생존 전문가 김병철 정도일 텐데 따지고 보면 몇 번 나오지도 않았다. 나도 [입시명문사립 정글고등학교]의 불사조 같은 캐릭터를 가지고 싶었다. 잘 만든 만화는 캐릭터를 설정해서 던져 놓고 자기들끼리 노는 걸 관찰해서 그리면 된다는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하나하나 다 지정해줘야 했지. 그게 너무 스트레스였다.

스스로는 장편 에피소드가 더 재밌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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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풍운아 미노타우로스’ 같은 장편 에피소드는 캐릭터를 가지고 하는 재미가 있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재밌었다. 매회 캐릭터의 성격에 뭔가를 추가하며 만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사실 더 하고 싶었는데 하도 내리라고 해서 내렸다. ‘서양신과 함께’도 욕 엄청 먹었다.

아무래도 [이말년 씨리즈]에서 기대하는 게 짧고 굵은 에피소드라서 그런 거 아닐까.
우선 한 회당 컷이 다른 스토리 만화에 비해 짧은 편이다. 30컷 혹은 길어야 40컷이지. 그리고 주 1회 연재니까 7회 짜리 장편을 하면 두 달이 걸리니 볼 때 감질나지. 독자들은 매주 새로운 걸 보는데 익숙해져 있으니까. ‘이니셜 M’ 같은 에피소드도 다 끝났을 땐 재밌다고 해줬지만 연재 중엔 욕을 많이 먹었다.

앞서 패러디로 고민했던 것과 통하는 지점 같다. 매주 새로운 웃음을 주기에는 유행 패러디가 먹히지만, 시간이 지난 뒤 몰아서 볼 땐 장편 에피소드가 나을 수 있다.
만화를 그리다가 과거 캐릭터를 겹치기 출연시키려고 예전 걸 보면 그런 긴 에피소드가 재밌다. 나도 모르게 계속 본다. (웃음) 반면 패러디로 떡칠된 걸 보면 ‘뭐야, 이게?’ 이러고. 그런데 나 스스로 [이말년 씨리즈] 스타일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렇게 길게 이어가기 어려운 것도 분명 있다.

개연성 문제인 건데.
예전에는 그 뒤를 생각 안 해도 됐으니까. 어떻게든 그냥 끝내고 다음 에피소드를 만들면 됐는데 장편으로 가면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삼국지]를 하는 것도 어렵다. 내가 이해가 되어야 개연성을 마들 수 있으니까. 제일 이해 안 되는 게, 장수끼리 일대일로 싸우는 거다. 병사들이 있는데 왜 일대일로 싸울까. 자기 병사가 많으면 그냥 밀어붙이면 되는 건데. 그렇다고 [삼국지] 정사로 풀려니 재미가 없고. 특히 최훈 작가님의 [삼국전투기] 댓글만 봐도 알 수 있듯, [삼국지]는 전문 지식에 빠삭한 마니아 독자가 많아서 부담이 있다. 분명 해보고 싶은 소재지만 내가 개연성 있게 풀어낼 만큼 잘 아는 게 아니라 좀 두렵다.

만화가로서 남에게 관심을 얻고 싶은 욕망이 없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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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아 미노타우로스’처럼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하는 건 어떤가. 그건 주인공마다 에피소드를 따로 만들 수 있지 않나.
그것도 재밌을 것 같다. 만들어서 학습만화 시장에 내는 거다. 한 5년 정도 바짝 해서 200억 원 정도 벌고 빠지는 거다. 그래야겠네. (웃음)

농담처럼 말했지만, 평생 먹고 살 돈이 있으면 만화가는 안 할 생각인가.
돈이 있으면 안 하지. 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겠나. 심심할 때마다 그냥 블로그에 비정기적으로 올리면 되지.

돈이 많으면 일을 안 하겠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왜 굳이 그려 블로그에 올리느냐다.
만화를 그리고 남에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관심을 얻고 싶은 성격이라는 거다. 작가에게 그 욕망이 없을 수 없다. 아니면 왜 사람들에게 보여주나. 만화를 그리는 것 자체의 뿌듯함만으로는 작가를 할 수 없다. 그럴 거면 자기 집에서 혼자 보고 있으면 되지.

그런 면에서 네이버라는 대형 연재처에서 많은 댓글을 받는 건 즐거웠나.
그런 건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경우 비판이던 칭찬이던 좀 더 진솔한 느낌이 있다. 아마추어끼리 의견을 교환하는 느낌? 그에 반해 네이버 댓글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에 따라 편들거나 욕하는 부분도 어느 정도 있다. 그래도 댓글 많은 게 좋다. 대형 연재처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연재를 한다는 증거니까. 덕분에 만화가로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전엔 그냥 내가 재밌어서 게시판에 만화를 올린 거지, 자신 있진 않았다. 디시인사이드에서도 ‘불타는 버스’ 이전에는 인기도 없었다. 그런데 이젠 돈을 받으며 큰 연재처에 연재를 하니까.

표현 수위 센 걸 좋아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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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형 연재처인 만큼 디시인사이드에서 할 때보다 어떤 제약이 있을 것도 같다.
특정 상품명을 넣어야 재밌는데 그럴 수 없을 때가 있다. 대명사격인 제품들, 가령 컴배트 같은 거. 그걸 그냥 바퀴벌레약이라고 하면 재미없지 않나. 그게 뭐야. 그래서 종종 넣어 원고를 보내는데 그래도 담당자분들이 많이 봐주신다. 아주 똑같이 하면 문제가 될까봐 된소리로 넣는다. ‘쐬고기면’이나 ‘무빠마’로. 그렇게 지목해야 웃기지 싼 라면, 비싼 라면, 하면 하나도 재미없다. 사실 걱정은 좀 했다. 삼양라면 측에서 왜 농심은 고급 이미지고 삼양은 싸구려 이미지냐고 뭐라고 할까봐. 그런데 내 만화 영향력이 그 정도는 아닌 거 같다. (웃음)

대사 수위는 어떤가. 가령 ‘야, 이 미친놈아’ 같은 대사들.
웬만하면 욕을 하면 안 되는데 거기까진 봐주시더라. 그리고 내가 표현 수위 센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 ‘병맛’이라는 식으로 귀귀 작가님이랑 자주 묶어서 이야기되는데 그 부분이 다르다. 때리는 장면이라도 난 안 아파보이게 투닥투닥 하면, 귀귀 작가님은 뭔가가 부러지는 식이다. 같은 가벼운 분위기의 개그 만화지만 다들 독자적인 노선이 구축되는 것 같다. 귀귀 작가님도, 조석 작가님도, 나도.

본인은 스스로 어떤 스타일 같나.
우선은 김진태 작가님 같은 재미를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참신한 설정 위에 깨알 같은 재미. 가령 기존에 있던 이런 시스템을 이렇게 굴리면 재밌지 않을까. 혹은 어떤 행동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들.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재밌다.

그동안 내 능력의 300퍼센트를 보여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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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지난 4년 동안 연재한 [이말년 씨리즈]를 평가하면 어떤가.
아주 만족한다. 내 능력 이상을 보여준 것 같다. 앞서 소재 고갈에 대해 말했지만 사실 정식 연재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만성적인 소재 고갈이 왔다. 그런데도 4년이나 끌고 왔다는 게 믿기지 않고 스스로에게 상을 받고 싶다.

개운한가.
그보다는 불안하다. 내 능력의 300퍼센트에 달하는 결과물을 낸 거 같아서. 이제 막 삼십대 초반이고 진정한 인생 시작인데 새로운 걸 잘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신작이 어떤 의미의 작품이 되면 좋겠나.
만화가로서 명줄을 늘려주는 작품? [이말년 씨리즈]가 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줬다면, 신작이 잘 되면 이 일을 업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작가프로필


발행일

발행일 : 2012. 12. 20.

출처

제공처 정보

  • 위근우 웹 매거진 'ize' 취재팀장

    <드래곤볼>과 <북두신권>을 보면 문제아가 될 거라는 어른들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만화책을 보며 그럭저럭 멀쩡하게 성장. 동네 글 좀 쓰는 형으로 지내다가 웹 매거진 〈ize〉 취재팀장으로 신분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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