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세상편집'] 지겨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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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1부장

지겨우시죠. 참사 1년이 지나도록 세월호 타령이니.

"유가족이 벼슬이야? 데모나 하고. 대통령이 무슨 죄가 있어? 돈 욕심에 넘치도록 짐을 실은 유병언이나, 저 살자고 먼저 나온 선장이 문제지."

이런 말에도 솔깃하시죠. "천안함 용사들은 나라 지키려다 희생됐지만, 단원고 학생들은 그저 수학여행 가다 죽은 거 아니냐고? 경제도 어려운데 수천억씩 들여 세월호 인양은 왜 하려고 해?"

카타리나 블룸이란 독일 여자가 있었습니다. 차이퉁이란 신문의 오보 탓에 모든 걸 잃었던 그녀는 결국 기자를 총으로 쏴 죽입니다. 하인리히 뵐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 나오는 이야깁니다.

범죄자와 놀아나고, 공산주의자 아버지를 둔, 그리고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매정한 딸로 연일 차이퉁의 지면을 장식했던 그녀는 실제론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평범한 가사도우미였습니다. 교묘하고 악의적인 왜곡 보도가 그녀를 괴물로 만든 거죠. 블룸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도 절대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래 병실에 들어가 인터뷰했던 차이퉁 기자였습니다.

치근대는 기자를 죽이고도 후회의 감정을 도무지 느끼지 못했다는 블룸의 진술은 섬뜩하기보다 당연해 보입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블룸의 심정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잠수인력 555명과 선박 167척, 헬기 29대 따위를 총동원해 선체수색 작업을 펼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이 받아쓰는 동안 더는 살아서 뭍으로 나온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해경 123정이 제때 승객 구조를 시작했다면 6분 45초 만에 4층과 5층 갑판을 이용해 모두 탈출할 수 있었다는 재판 증언을 듣고 유가족 심정이 어땠을까요?

국가의 구조 책임을 묻기보다 도피행각을 벌이던 유대균과 그의 호위무사가 방안에서 뭘 시켜 먹었는지 시시콜콜 뉴스특보로 전한 언론에 뭘 더 기대할 수 있었을까요? 돈 이야기 할 때가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유가족을 향해 8억 얼마니 하는 배·보상금을 떠벌리는 정부나 그걸 고스란히 받아쓰는 언론에 뭘 더 바랄 수 있었을까요?

언론에 갈등유발자로 찍혔던 유민 아빠 김영오 씨는 이런 말을 했답니다. "교통사고 나서 죽었다면 이렇게 안 싸웠어요. 시신을 보니 어떤 아이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고 어떤 아이는 기어오르느라 손톱이 다 빠져 있었어. 그 순간 정부가 구하지 않는 걸 보고 있었다고요."

무가지 메트로 신문은 지난 16일자 1면을 작고 흐릿한 세월호 이미지와 '외로워 마소/물 밖도 차고 깜깜하오'란 글 외엔 온통 까맣게 채웠습니다.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은 "옛날에 간첩 잡으려고 할 때 국민이 많이 잡았다"는 엉뚱한 비유를 끌어와 국민의 안전의식을 강조했다지요. 그저께 세월호 집회에서 유가족을 기다린 건 경찰 차벽과 캡사이신 최루액, 물대포였다지요. 물 밖도 참 깜깜한 세상입니다.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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