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의 단도직입]'성(性) 갑질'을 멈추게 하라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골프장 경기진행요원(속칭 캐디) 성추행' 사건은 우리 사회의 부끄럽고 참담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박 전 의장의 지위가 특별히 높고, 그의 가해 행동이 지나치게 심각하며, 피해자가 남다른 용기를 발휘해 고소했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주변에서는 유사한 피해 상황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여군 장교가 상관의 성추행을 견디기 힘들어 자살하고, 여교사들을 상습 성추행한 교장은 경징계를 받고 만다. 검사는 여자 피의자를 성추행하고, 항공사는 승무원 대상 성추행과 성희롱 승객들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교수의 제자 성추행과 성희롱이 심각한 문제고, 회식 자리 성추행 사건은 점심시간 직장인들의 단골 화젯거리가 된 지 오래다.
왜 이 지경일까? 일부 주장처럼 '남자의 성 욕구는 본능적'이고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강해서'일까? 그렇다면 그 본능적 욕구는 왜 늘 높고 강한 사람이 낮고 약한 사람을 대할 때만 발동할까? 한국 남자들이 다른 인종이나 민족의 남자들보다 진화가 덜 된 미개한 인종집단일까? 게다가, 최근엔 여성 상관이나 직장 상사, 혹은 교사들이 남자 신입사원이나 학생들을 성추행하는 사건들도 늘고 있다. 지위가 높아지면 여성 성호르몬이 남성 성호르몬으로 바뀌고 남성적 성 욕구가 생기는 놀라운 '생물학적 변화'가 발생하는 것일까? 의학적, 심리학적으로 '성(性·sex)'은 대뇌 '성 중추'에 의해 통제된다. 발정기에만 성 욕구가 생기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언제든지 인지와 의식, 상상 등의 작용으로 성 중추가 자극되어 성 욕구가 발동될 수 있다. 심지어 노령, 질병, 거세 등으로 인해 기능적으로 '성불능' 상태인 사람도 성적인 환상을 즐기고 다른 사람에게 성적인 가해 행위를 할 수 있다. 심지어 동유럽 체코 공화국에선 물리적 거세를 당한 성범죄 전과자가 연쇄성폭행을 저지르다 검거되기도 했다. 물론,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등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충동과 욕구를 통제하지 못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성도착 환자'들도 있다.
하지만, 권력자 혹은 상급자나 고객 등 소위 '갑'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소위 '을'에게 저지르는 성희롱과 성추행은 모두 철저히 합리적 선택에 의해 저지르는 범죄들이다. 즉, 개인적으로는 '본능'이 아닌 인지와 사고 등 '생각'과 '습관'이 문제고, 사회적으로는 문화와 관행이 원인이다. 그동안 대기업의 중소기업 혹은 대리점 대상 횡포, 지위가 높거나 많이 가진 자들이 상대적으로 약한 자들을 괴롭히고 착취하거나 폭행하는 소위 '갑질' 논란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성(性) 갑질'이라 할 만하다. '성(性) 갑질'이 더 문제인 이유는, 가해 행위가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피해자는 극도로 수치심을 느껴 큰 충격과 긴 후유증에 시달리는 데 반해 신고나 항의 혹은 피해구제 노력을 하기 어렵다는 특성 때문이다. 만약 '성(性) 갑질' 피해 사실을 알리거나 신고할 경우 피해자들을 도와야 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오히려 숨기고 무마하려 애쓰거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가하기도 한다. 가해자들은 이런 피해자들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서로 공유하거나 학습하면서 '성(性) 갑질'을 상습적으로 저질러왔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부끄럽고 안타깝게도 누이와 딸과 손녀를 생각하라며 '갑들에게 반성과 자각'을 호소해 봐야 효과가 없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고소한 용감한 골프장 경기진행요원 같은 '을'들의 자기 권리 찾기 노력과 이들의 용기와 노력을 지키고 보호하고 북돋워 주는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이 '성(性) 갑질'을 멈추게 해야 한다. '발본색원' '4대 악 척결' 같은 용어는 '성(性) 갑질'에 적용되어야 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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