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촌 해운대 마린시티에는 정치인 발길 분주…부산 동구 피해지역은 외면

지난 5일 태풍 '차바'가 부산을 강타했을 때 부산 동구 자성대아파트로 불어난 강물이 밀려들었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겪는 물난리라지만 이날은 달랐다고 했다. 미군 보급부대 담벼락을 따라 늘어선 강둑을 타넘어 순식간에 들이닥친 물벼락에 주민들은 서둘러 몸을 피해야 했다.

7일 찾은 현장은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있었다. 주민 강은서(55)씨가 기자를 불러 세웠다. 그녀는 하소연이 하고 싶은 듯 했다. 집 안으로 흔쾌히 들어오라고 했다. 장판이 축축했다. 강씨가 "닦아도 닦아도 계속 물이 나온다"고 한숨쉬었다.

강씨는 물난리에 대비해 올봄에 45만 원을 들여 벽돌을 쌓아 문턱을 높였다고 했다. 하지만 안방까지 물이 들어차고, 화장실로는 오수가 역류했다. 흙탕물에서 건져낸 한 아름 빨래가 먹구름 잔뜩 낀 하늘 아래 마르지 못한 채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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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차바로 인한 물난리로 피해를 본 주민 강은서(55)씨가 손으로 지난 5일 범람한 하천을 가르키고 있다./오마이뉴스

같은 부산 하늘 아래서 벌어진 물난리였다. 하지만 부산시장도, 유력 정치인도, 정부 고위관계자도 이 곳을 찾지 않았다. 하나같이 해운대의 초고층 빌딩이 모여 있는 마린시티를 방문했다. 이날은 행정자치부 차관이 마린시티를 방문해 정부 차원의 신속한 복구를 약속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강씨가 읊조렸다.

"거기는 부자들이 살잖아요."

강씨는 "우리가 돈 많은 부자면 이런 14평 아파트에 살겠어요"라며 "우리가 있게 살면 그러겠어요"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1976년 지어진 자성대아파트는 시설물 안전등급 평가기준에 따라 D등급에 해당한다. 긴급한 보수 보강이나 사용제한 여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시설이란 말이다.

하지만 '없는 사람'들이 사는 이 아파트에 관심을 갖는 '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마린시티에 파도가 쳐 벤츠 승용차가 파손되고, 초고층 아파트가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에 부산시는 2020년까지 국비와 시비 655억 원을 들여 방재 시설을 추가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6일 마린시티를 찾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도 예산 확보에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해운대는 자기들이 조망권 때문에 방파제 높이 낮추라고 했다카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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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렬 행정자치부 차관은 7일 최근 태풍 차바로 피해를 본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를 방문했다. 행정자치부는 김 차관이 "피해를 조속히 복구해 조속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관계 부처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오마이뉴스

자성대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난 주민 김경은(71)씨가 속사포처럼 불만을 쏟아냈다. 김씨는 구청이 지난 2014년 설치한 물난리 방지 시설이 무용지물이었다고 했다. 동구청은 상습 침수지역인 이 곳에 120마력짜리 물펌프를 설치하고, 강물이 넘어오지 못하게 수문을 세웠다.

여름이면 모기와 냄새 때문에 살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김씨의 곁을 지나던 주민 홍순분(76)씨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홍씨의 집도 물에 잠겼다. 먹으려고 사놨던 국수와 설탕, 감자가 물에 잠겨 먹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휴대전화와 지갑도 잃어버렸다.

그래도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무사히 대피시킨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홍씨였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홍씨가 "이따 오후에 동장님이 오신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근데 오시겠나, 바쁘신데..."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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