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대체 뭐냐” 예술 밖에서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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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5.08.26. 오전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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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스위스 취리히에서 초대전 갖는 문경원-전준호 작가
2012년 제작한 13분 35초 길이의 2채널 영상물 ‘세상의 저편(El Fin Del Mundo)’. 지구 종말의 시간에 작업을 이어가는 예술가, 가까운 미래에 미의식의 실마리를 깨닫는 신인류 사이의 교감을 담아냈다.문경원 전준호 작가는 이 작품을 포함한 ‘뉴스프롬노웨어’ 프로젝트로 독일 카셀 도쿠멘타에 초청받으며 세계 미술계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갤러리현대 제공

“미술계는 돈과 권력의 놀이판이다. 철저하게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다. 소외된 소수의 약자를 배려하고 조명하는 취지를 내세운 전시일지라도 그 이면에는 헤게모니를 둘러싼 각 집단의 이전투구가 깔려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판에서, 작가는 뭘 하는 걸까.”

올해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를 맡았던 문경원 전준호 작가(46)가 7년간 이어가고 있는 ‘뉴스프롬노웨어(News From Nowhere)’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그런 자괴였다. 포장과 어긋나는 본질, 여행지 기념품을 모으듯 예술품을 대하는 컬렉터가 지배하는 미술시장의 현실에 대한 환멸과 회의로 고민하던 두 작가는 ‘세상에 예술이 필요한가, 예술의 효용은 뭘까’라는 질문을 예술 밖에서 던지기 시작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 건축연구소와 협업한 ‘모바일 아고라’ 프로젝트 개념도. 도시 음향환경을 수집해 작품으로 재생산하는 퍼포먼스를 함께 선보인다. 갤러리현대 제공

밑그림은 ‘환경 급변으로 극소수 생존자만 남은 가까운 미래의 지구’. 그 가상 프레임 위에서 건축가, 디자이너, 영화감독, 시인, 생물학자, 작곡가와 교류해 영상물, 미래도시 계획안, 인공장기, 책, 설치작품 등 각양각색의 결과물을 빚어냈다. 예술의 경계를 휘저은 이 별난 프로젝트는 2012년 독일의 전위적 현대미술제 ‘카셀 도쿠멘타’에 처음 소개된 후 다음 해 미국 시카고 설리번갤러리로 무대를 옮겨 확장됐다. 전시, 강연, 새로운 교류를 거듭해 온 이들은 29일∼11월 8일 스위스 취리히 미그로스 현대미술관 초청전으로 세 번째 전환기를 맞는다. 출국 직전 두 사람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스위스에서는 어떤 작업을 새로 선보이나.


“연방공과대 건축연구소 ‘UTT(Urban Think Tank)’와 함께 ‘모바일 아고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지역사회 소통과 교류 거점인 광장(아고라)을 이동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취리히 곳곳의 소리와 이미지를 수집한다. 그 콘텐츠를 재료로 별도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이전 작업을 전시하면서 연방공과대 미래도시연구소와 함께 도시환경 주제의 토론회도 연다.”

―협업 프로젝트에서 두 작가의 실질적 역할이 무엇인지 의구심이 든다.

“예를 들어 답하겠다. 2011년 일본의 산업디자이너그룹 타크람에 ‘극한 상황을 위한 정수기’ 개발을 제안했다. 첫 회의에서 들은 답은 ‘정수기는 이미 많다’는 거절이었다. 몇 주 뒤 동일본 대지진이 터지고 나서 그룹 리더로부터 e메일이 왔다. ‘재난을 맞아 디자이너로서 세상에 아무 보탬도 주지 못하는 것을 알게 돼 괴롭다. 프로젝트 해 보자’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얻어낸 결과물이 체내 수분을 정화해 활용하는 인공 정수기관이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새 협업프로젝트 ‘모바일 아고라’를 선보이는 전준호(왼쪽) 문경원 씨. 문경원 전준호 제공


―어떤 일이든 그 본질적 의미에 대한 의혹과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예술가의 역
할이라 보는 건가.

“고착된 존재의 표면에 변화의 틈새를 만들고 본질을 들여다볼 단초를 던지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 믿는다. 좋은 작품을 만난 관객이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의 찰나를 경험하는 것처럼,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귀한 만남을 빛의 파편처럼 찾아냈다. 이창동 감독, 디자이너 정구호 씨, 고은 시인, 건축가 이토 도요 씨…. 모두 자기 일의 본질적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험해 온 이들이다.”

―‘이게 뭐가 예술이냐’는 지적도 있다.

“상관없다. 어쩌면 뭐든, 예술이 아니라고 일컬어지는 순간 비로소 예술일 수 있을 거다. 우리는 이 작업을 통해 삶과 일에 대한 반성적 태도에 긍정적 기능이 있음을 확인했다. 새로운 사고와 유추를 촉발하는 무언가가 예술이라면, 우리 작업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틀림없이 예술이다.”

―공동 프로젝트는 언제 마무리할 생각인가.

“이렇게 크게, 길게 이어질지 몰랐다. 의견 충돌로 ‘이제 끝’이라고 했다가도 어느새 다음 작업을 의논하고 있다. 정해진 건 없다. 프로젝트도, 두 작가도, 각자의 작업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생명체가 자라는 것처럼.”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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