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통 크면 보수?.. '알통 보수' 논란의 전모

입력 2013. 2. 19. 16:03 수정 2013. 2. 1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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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왜곡보도 논란'이 남긴 것들… 조롱거리 된 MBC 뉴스데스크, 왜 그랬을까?

[미디어오늘 허완 기자]

MBC < 뉴스데스크 > 가 18일 보도한 '알통' 리포트가 논란에 휩싸였다. 정치적 신념과 '알통의 굵기' 사이의 상관관계를 다룬 논문을 보도한 게 문제가 됐다. 해당 리포트는 포털 사이트 연관검색어에 등장할 만큼 관심을 끌었다. 방송 직후부터 트위터에는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다.

논란의 요지는 간단하다. MBC가 이코노미스트에 소개된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알통이 굵으면 보수라고 보도했다'는 것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오늘의 개그"라고, 고종석씨는 "초대형 방송사고"라고 트윗을 남겼다. 밤새 트위터리안들의 비판이 쏟아졌고,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논문의 원문이코노미스트 기사를 찾아내 직접 번역을 했다. 몇몇 언론도 논문을 인용해가며 "알통이 굵은 남성은 보수, 알통이 가는 남성은 진보로 구분한 MBC의 보도와는 다르다는 지적"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은 일단 '오해'의 산물인 것으로 보인다. MBC는 알통의 굵기와 진보·보수와의 인과관계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소득이 꽤 높고, 자신이 이 사회에서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중산층"이라며 소개한 임아무개씨와 금아무개씨의 알통 굵기를 쟀고, 소득 재분배에 대한 임씨의 답변과 금씨의 답변을 나란히 소개했을 뿐이었다.

▲ 18일 방송된 MBC < 뉴스데스크 > 화면

물론 오해의 여지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MBC는 임씨와 금씨에게 '신념의 차이'가 있다고 규정했고,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임씨와 금씨가 각각 '보수'와 '진보'의 의견을 대변한 것으로 해석했다. '알통이 굵은 임씨'가 보수적 의견을 냈고, 그 반대인 금씨가 진보적 의견을 냈다고 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 보수·진보 체질 따로 있나? > 라는 리포트 제목과 '알통 크면 보수?'라는 어깨 제목이었다. 시청자들은 리포트의 제목과 전개, 리포트 내내 왼쪽 상단에 배치됐던 어깨제목을 보면서 자연스레 '알통이 굵은 남성은 보수, 알통이 가는 남성은 진보'라는 구도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MBC가 이를 전제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른 일차적 비판은 '그게 말이 되느냐'는 반응이었다. 영화감독 이송희일씨의 "MBC의 이른바 근육정치학, 21세기의 새로운 변종 우생학"이라는 트윗이 대표적이다. '그럼 한민관(개그맨)은 진보의 화신'이냐는 식의 반응도 같은 맥락이다. 보도된 내용 자체가 '황당'하다는 것이다. 출처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네티즌들은 해당 원문을 직접 찾아냈다.

원문이 알려지자, 이번에는 왜곡보도 논란이 제기됐다. 네티즌들은 '상체 근력이 강한 남자일수록 자신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지켜내려고 한다'는 논문의 결론을 찾아냈다. 앞서 MBC의 보도를 '알통이 굵으면 보수'라고 해석했던 이들은 MBC가 '알통의 굵기'와 정치적 성향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리포트를 꼼꼼히 살펴보면, MBC는 이코노미스트 보도논문의 결론을 충실히 전했다. "알통이 굵은 남자들 다수가 자신의 경제적 형편에 유리한 이념을 선택한 반면, 알통이 가는 남자들 다수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보도한 것이다.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MBC의 보도를 '알통이 굵으면 보수'라고 해석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 18일 방송된 MBC < 뉴스데스크 > 화면

해당 리포트를 작성한 기자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권순표 기자는 19일 통화에서 "기사 자체에는 어떤 오해의 여지도 없다"며 "(기사가 틀렸다는 지적을) 1㎜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파와 좌파를 떠나서 무조건 감정적으로 남을 비난할 게 아니라 자기가 판단하는 게 정말 이성적인 것인지 따져보자는 게 기사의 취지"라며 이 같이 말했다.

해당 보도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권 기자는 "제목을 잘못 뽑았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편집자들의 판단에 오류가 있었다고 본다"며 "(기사 취지대로라면) '힘의 크기가 신념에 영향을 준다?' 정도가 (제목이) 되어야 했다"고 말했다. "('알통이 굵으면 보수'라는) 그런 내용은 원 논문에도 없고 기사에도 전혀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종합하면, 제목을 제외한 리포트 자체에서 사실관계에 어긋나는 대목은 없었다. '왜곡'이라는 비판 역시 MBC의 보도를 '왜곡'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물론 인용된 연구 결과의 타당성, 지난해 발표된 논문이 지금 시점에 보도된 배경, 뒤에 이어지는 '유전자' 보도와 함께 '알통 뉴스'를 편집한 의도, 정치적 의견을 '신념'으로 표현한 문제 등을 논외로 할 때의 이야기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지만, 이번 논란은 MBC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인 것처럼 보인다. 우선 부적절한 제목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스크의 '실책'이 눈에 띈다. 이 정도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대다수 시청자들의 '오독'을 부르는 제목을 내걸었고 이게 그대로 방송됐기 때문이다. < 뉴스데스크 > 에 '데스크'가 없었던 셈이다.

▲ 19일 오후,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MBC 연관검색어에 'MBC뉴스 알통굵기'가 올라와 있다.

김재철 사장 체제의 MBC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가 매우 낮다는 점도 함께 드러난 꼴이 됐다. '오독'을 부른 데스크의 결정적 실수와 그 책임을 감안하더라도, 시청자들은 너무 쉽게 MBC의 '왜곡보도'를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였다. MBC의 리포트를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은 책임도 있겠으나, 그것만으로는 MBC가 이처럼 '조롱'의 대상이 된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기사와 논문의 원문을 직접 찾아 나설 정도로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파헤쳤던 이들 중 상당수는 정작 MBC의 '왜곡' 여부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단순히 MBC를 싫어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무조건 감정적'으로 MBC를 비난했던 걸까?

MBC의 한 중견기자는 이같은 시청자들의 반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자괴스럽다. 분량과 비중과 포장이 너무 과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견강부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당 리포트를 보도한) 기자의 의도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동안 대선보도 등에서 의도를 가지고 왜곡하고 비틀었던 보도들에 있다. 그래서 그런 보도들 때문에 이제는 MBC가 뭘 해도 웃음거리가 되는 것 같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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