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 다이내믹 도넛] 서사과잉: 김어준씨의 경우

2017. 7. 1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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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스파이더맨의 삼촌 벤 파커가 남긴 불멸의 명언이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인기를 얻으면서 김씨의 발언은 어지간한 군소 매체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지니게 됐다. 사회적 평가 내지 공적 비판의 대상이란 거다.

[한겨레]

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서사과잉의 대표적 사례는 음모론이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음모론자 딱 한 명만 대라면 이분, 김어준씨다. ‘썰’과 음모론은 별처럼 많았지만 이 분야에서 그만큼 화려한 커리어를 쌓은 사람은 단언컨대 전무했다. 2005년 황우석 사태부터 2017년 개봉한 <더 플랜>에 이르기까지, 무려 12년간 그는 ‘조선 제일 음모론자’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다.

<더 플랜>은 김어준씨가 기획과 제작을 주도하고 최진성씨가 감독한 다큐멘터리로, 누군가가 18대 대선(2012년) 개표를 조작했다는 가공할 음모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분류표에서 후보 간 득표율과 미분류표에서 후보 간 득표율이 같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위 ‘케이(K)값’이라고 부른 이 비율이 1이 나와야 정상이란 것.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간 케이값 평균은 1.5였다. 그런데 19대 대선(2017년) 직후 발표된 수치를 보니 문재인-홍준표 사이 케이값은 1.60이 나왔고, 문재인-안철수 사이 케이값은 1.24가 나왔다. 그렇다면 19대 대선도 조작일까? 전문가들은 케이값이 1.5나 1.6이 나오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말한다. 후보마다 미분류율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것이다. 보수 지지가 많은 곳일수록, 고령층 투표자가 많은 곳일수록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미분류표 차이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층에서 상대적으로 미분류표 발생 확률이 높다는 주장에 대해 ‘김어준의 파파이스’ 측은 개표소별 고령층 비중과 케이값이 상관없는 걸로 나타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그건 전혀 반박이 되지 못한다. 정의상 케이값은 ‘비율의 상대비율’이므로 분모와 분자가 동시에 변할 수 있고, 그렇기에 단순히 고령층 비율에 따라 케이값이 종속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다. 고령층이 적은 지역에서 높은 케이값이 나올 수 있고 고령층이 많은 지역에서 낮은 케이값이 나올 수도 있다. 애초 ‘케이값이 1이어야 정상이다’라는 전제부터가 치명적 오류였다. 전제가 오류이기 때문에 결론도 당연히 오류다.

굳이 이렇게 글을 쓰는 건, 문제가 ‘집에 누워 있는 김씨의 은밀한 취미생활’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스파이더맨의 삼촌 벤 파커가 남긴 불멸의 명언이다. ‘거대 미디어에 비하면 김어준이 무슨 대단한 권력이냐’고 반문할 사람이 많겠지만 김어준씨, 권력 맞다. 그의 말 한마디에 여론이 출렁이고 현금 수십억원이 순식간에 모금된다. 이명박 정권 당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인기를 얻으면서 김씨의 발언은 어지간한 군소 매체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지니게 됐다. 사회적 평가 내지 공적 비판의 대상이란 거다. 물론 큰 범죄를 저지르고도 일말의 반성조차 없는 악마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그러나 그들이 내 타락의 핑계일 수 없음도 자명하다.

오해 말자. 이건 음모론자를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단 소리가 아니다. 발언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묻자는 소리다. 음모론이 설득력을 잃었을 경우 적어도 성실한 해명 내지 사과가 있어야 한다. 김어준씨의 주요 음모론 중 다수는 논파되었거나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은 내가 알기로 없다. 학자였다면 이미 학계에서 퇴출되었어야 할 상황이다. 그는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흥행’이 되기 때문일까, 소위 진보언론도 제대로 비판하지 않고 심지어 편승하기 일쑤다. 좋지도, 옳지도 않다. 비이성적인 흐름에 누군가는 강하게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혹자는 이렇게도 말할 것이다. 김어준씨가 잘한 게 있지 않으냐고, 폭로의 ‘순기능’도 봐야 한다고. 동의한다. 이명박씨에게도 대중교통 환승제도 같은 좋은 업적이 있었다. 아마 나름의 선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게 이명박씨를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일 수는 없다.

2005년에 김어준씨가 황우석을 비판하는 언론을 향해 일갈한 적이 있다. “잘 모르겠거든, 제발, 닥치고 있자.”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잘 몰라도 떠들 수 있다. 그게 민주주의다. 다만 뱉은 말이 틀렸다고 밝혀지면 인정해야 한다. 그건 건강한 민주주의의 필수조건이다. 서사는 쾌락적이지만 과하면 마약이 되고 심하면 흉기가 된다. 한국 사회의 서사과잉은 이미 한계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건 섹시한 서사가 아니라 담백한 지성이다. 그 지성의 증거는 학력 따위가 아니라 자기객관화 능력이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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